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인하르트 하데겐 (문단 편집) == 쓰러져가는 제3제국에서 == 3월에 두 번째로 북치기 작전에 재차 출격한 그는 10척 57,170톤의 적함을 격침시켜 총통 히틀러와 함께 식사를 하며 직접 백엽 기사철십자장을 수여받고 5월에는 잠수함 수리를 위해 [[킬]] 항구에 머무른다. 이 시기쯤 되자 [[군의관]]이 이런 몸 상태로는 더 이상 항해를 견뎌낼 수 없다고 진단을 내리면서 더 이상 유보트를 탈 수 없게 된다. 육상으로 전출된 하데겐은 7월 31일에 [[그디니아|고텐하펜]](Gotenhafen)에 위치한 제27훈련 전단(27. Unterseebootsflottille) 본부에서 함대 지도자 교육을 받은 후, [[1943년]] 3월부터는 소령(Korvettenkapitän) 계급장을 달고 잠수함 교육대의 어뢰 교관으로 근무했다. 1945년 2월이 되자 [[제3제국]]의 운명은 정해졌고, 히틀러는 해군 장병들을 모두 배에서 내리게 하여 소총을 쥐어주곤 육상에서 최후의 항전을 하라고 명령했다. 하데겐 소령은 제6해군 보병연대(Marine Infanterie Regiment 6)라는 응급 편성된 소총 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고, 3월에는 새로 창설된 제2해군 보병사단(2.Marine-Infanterie-Division)의 지휘하에 들어가게 된다. 하데겐의 연대는 [[브레멘]] 지역에서 후퇴 작전을 벌이던 중, 1945년 5월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서 진격해온 [[영국군]]에게 패하고 남은 생존자는 모두 포로가 되었다. 사실 이들은 1945년 4월 말에 [[펠릭스 슈타이너]] SS 대장의 지휘 하에 들어가 제7기갑사단과 제25기갑척탄병 사단과 함께 [[베를린]] 구원을 위한 최후의 반격에 참가할 예정이었는데, 만일 그랬다면 소련군에게 잡혔을 것이다. 원래 하데겐은 이 전투에 나갔어야 했지만, 전투 도중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디프테리아]]에 감염되는 바람에 군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이 때문에 현장에 없었다. 종전 며칠을 남겨두고 하데겐 소령은 자살한 히틀러의 뒤를 이어 제3제국의 [[총통]]으로 지명된 카를 되니츠 제독의 부관이 되었으나, 항복 절차를 모두 끝낸 직후 영국군에게 연행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